이준상 (1840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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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이준상(李濬相, 1840년 음력 11월 29일 ~ ?)은 대한제국의 관료였으며,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를 지냈습니다.
생애 및 활동:
-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한문을 배웠습니다.
- 1896년(건양 1년) 경기도 관찰부 주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.
- 1899년(광무 3년) 남묘중건시별감동별단(南廟重建時別監董別單) 중추원 의관을 지냈습니다.
- 1900년(광무 4년) 이후 농상공부 기사를 거쳐 탁지부에서 재무관, 회계국장, 출납국장, 이재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.
- 1906년(광무 10년) 농공은행설립위원을 지냈습니다.
- 1908년(융희 2년) 기호흥학회 찬무원으로 활동하며 기부금 10원을 납부했습니다.
- 1909년(융희 3년) 일본 황태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황태자도한기념장(皇太子渡韓記念章)을 받았습니다.
- 1910년(융희 4년)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로 활동했습니다.
- 식민통치에 협력한 공로로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, 1915년 다이쇼[大正]대례기념장을 받았습니다.
- 1918년에 귀족의 예우에 준하는 종4위에 서위되었습니다.
참고 자료:
- 대한제국관원이력서(1972)
- 황성신문(1906.4.27)
- 조선총독부관보(1921.5.3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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